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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화 원

달과 게 x 미치오 슈스케

지호다 2015. 10. 7. 22:02


달과 게 - 2011년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저자
미치오 슈스케 지음
출판사
북폴리오 | 2011-03-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엄마의 남자가 사라지게 해주세요.” 2011년 나오키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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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이후, 게 형상의 암이 아버지를 먹어치우는 환영에 시달리는 신이치.
부모의 학대에 방치된 채, 묘한 어른스러움을 풍기는 하루야.
신이치의 할아버지 쇼죠가 몰았던 배의 사고로 엄마를 잃고, 그 이유를 찾는 나루미.


서로 의지하고 마음을 주면서도 한편으론 상처를 주며,
현실의 사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휩쓸리지 않으려 애쓴다.
조금은 고집스런 아이처럼, 조금은 바보스러운 어른처럼.

추리소설 작가답게 세 아이의 관계를 위화감 없이 잘 배치했다. 개연성 없는 큰 사건들 때문에 긴장감이 확 날아가버리는 경우도 없었다. 후반부에 신이치의 잔혹한 소원에 도달하기 위한 장치가 조금은 위태로워 보였지만 (차량에 숨어드는 식의), 아주 없을 법한 일도 아닌 것 같아 다시금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소라게'는 친숙하나 낯선 매개체다. 소설 안에서 소라게는 신이치의 트라우마이자 세 아이의 놀이대상이 된다. 소라게는 아이들의 질투와 기대- 욕망 속 관계의 중심에 녹아 내렸다가, '"묘한 것"을 기르는 신이치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 달빛 아래, 홀로 웅크려 소원을 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은 이야기의 절정이다. 소라게는 아버지를 잡아먹은 암이 되기도 하고, 신이 되기도 하며, 달빛 아래 잔인한 소원을 비는 게의 추한 그림자- 신이치가 되기도 한다. 이런 신이치의 변화들은 할아버지 쇼죠의 옛 기억과 전래를 빌어 담담하게 복선으로 깔린다. 신이치의 아이스러운 감정선이 뚝 끊기는 시점에는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해피엔딩처럼 끝나는 건가? 하고. 사건의 흐름은 명확한 것처럼 보이나, 등장인물들의 기복과 알듯 모를듯 하는 대화 속 긴장의 끈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팽팽하다. 줄거리를 모두 드러낸 등장인물들에게도 반쯤 베일을 덮어 놓는 듯한 느낌은, 추리소설에 뿌리를 둔 미치오 슈스케의 스타일인 것 같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이유라는 것이 있다. 세상일 전부에 분명히 이유가 있어.
내 다리가 잘린 것도, 그때 그 녀석을 제대로 찾지도 않고 도망쳤기 때문이야. 제일 먼저 도망쳤기 때문이지. 뭐든지 결국은 말이다....."
쇼조는 다시 한 번 왼쪽 다리를 쓰다듬었다.
"결국은 자기한테 되돌아오는 법이야."
p189

신이치는 점심시간에 자신을 놀리는 편지를 읽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은 슬픈데도, 사실은 분한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수업을 받았을 때의 괴로움을 떠올렸다. 분명 쇼조는 그 몇 배나 인내해 왔으리라. 자신이 왼쪽 다리를 잃은 것을, 산에 친구를 내버려두고 온 탓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나루미와 마찬가지로 무슨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p198

신이치는 그런 나루미의 옆얼굴을 보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밖으로 나온 소라게를 붙잡아 점토 받침대에 고정하고 셋이서 손을 모았을 때도 신이치는 눈 감은 나루미를 보고 있었다. 나루미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지만 아주 살짝 웃음을 띠고 있었고, 얇고 하얀 눈꺼풀이 이따금 실룩실룩 움직였다.
p218

신이치의 가슴 속에 젖은 모래가 점점 쌓여간다.
그 모래는 하루야의 솜씨에 놀란 척을 하거나, 나루미의 칭찬에 동의 할 때마다 부피가 늘어났다.
p232

신이치는 홀로 남겨진 느낌이 들었다.
이 장소를 하루야와 함께 발견한 사람은 신이치였다. 나루미를 이렇게 무리에 끼워준 사람도 신이치다. 어째서 자신이 소외 되어야 하는지, 어째서 두 사람이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고, 자신은 그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자 자동차 키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p238

- 안 한다니까 됐잖아.
더 공격적인 목소리를 낼 작정이었지만 도중에 약해지고 말았다. 그 사실에 신이치는 상처 입었다. 나루미를 보자 나루미 역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루미의 눈빛은 신이치가 예상하고 있던, 감사를 표시하는 눈빛이 아니라 예를 들자면 기대하던 텔레비전 방송이 생각했던 것보다 시시했을 때 내비치는 듯한 눈빛이었다.
....
눈을 감을 채 신이치는 어느덧 온 마음을 다해 빌고 있었다.
마키오카의 불행을 바랐을 때보다도 훨씬 강하게, 어떤 것을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p305

여기에 있고 싶다. 계속 여기에 있고 싶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여러가지가 불타 간다. 열기 속으로 녹아 들 듯이 사라져 간다.
....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신이치는 잠에 빠져들기 직전과도 같은 온화한 차분함을 맛보고 있었다. 탁하고 따듯한 물속에서 조용히 지내는 생물처럼, 여기라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포근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p328

"신이치, 뱃속에다가 너무 묘한 걸 기르지 말거라."
p344

그날부터 하루야와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교실에서도 눈조차 맞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흘만큼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했던 적이 있을까.
오늘 밤 신이치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다음에는 하루야 차례다.
p367

이건 누구냐.
꿈에서도 본 적 없을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얼굴을 한 소년이 맞은편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볼을 추하게 끌어올리고, 입술 틈사이로 이를 내보이며. 그 사이에 타액으로 만들어진 실을 늘어뜨린 채 검은자위 테두리가 몽땅 들어날 정도로 두 눈을 크게 뜨고서.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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